강유, 천수의 기린아?!

삼국지연의에서 촉한사의 끝자락으로 치달을 무렵, 촉한에 새롭게 가세하여 힘을 실어주는 인재가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 누구인지 짐작하셨겠지만, 제갈량이 천수의 기린아라 부르며 칭송해마지 않는 준걸인 강유가 되겠습니다.

헌데, 삼국지연의를 읽다보면 강유가 정말로 뛰어난 인재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제갈량이 죽기 전에는 완전히 제갈량의 치마폭(어이;;)에 감싸여 지내고, 제갈량 사후에는 북벌을 감행하지도 못하고(가끔 공격을 하기는 했지만, 성공하지도 못하고 지지부진 하다가 국력만 까먹죠. 물론 환관의 농간도 있기는 했습니다만)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다가 무너질 뿐이죠.
제갈량의 의발제자라는 면에 있어서도 그와 대립되는 등애보다 떨어지는 등(사실 대립이랄 것도 없지만, 위의 후기지수 중 등애와 종회가 남다르다보니 제 멋대로 라이벌 구도를... 어이;;), 촉한의 지지자들로써는 정말로 한심스럽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죠.

강유가 정말로 뛰어난 인재였는가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할 인물은 오호장의 한 명인 조운이 되겠습니다.

진수의 삼국지 촉한사를 살펴보면, 조운에 대한 평가가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그것만큼이나 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선주(유비)의 조운에 대한 평가도 그다지 탐탁한 것은 아니라, "그 담대함과 충정은 인정하겠으나 무용이 평범하고 그 담대함이 지나쳐 만용에 가까우니 크게 쓸 인물은 아니다"라고 평가하였다고 되어있죠.
하지만, 삼국지연의 속에서의 조운은 그야말로 신장(神裝)이 강림한 것 마냥 나오게됩니다. 특히 장판파에서 아두를 구출하는 장면 덕분에 그의 인기는 급상승해,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그야말로 "졸라 짱쎈 꽃돌이 - John Nase(?)"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합니다.(하지만 이에 대해 선주는 만용을 부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 향후 이러지 말라고 충고하죠)

어찌되었거나, 그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담대(한건지 만용인건지)하여 부리는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편리한 존재였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런 탓으로 제갈량은 선주와는 그 궤를 달리하여, 선주가 후대하지 않는 조운을 편애(?)하여 제갈량이 가는 곳에는 항상 조운이 있다! 싶을 정도로 데리고 다니며 중용합니다.

"조운이 왜 무예가 떨어지냐!"라고 불만을 가지신 분들이 많을 수 있겠는데, 역사 상의 평가야 어쨋든 실제로 삼국지연의에서 보여준 그의 모습에서도 중뿔나게 잘난 구석은 없어보입니다.
원소 밑에 있을 때에도, 이미 안량과 문추라는 희대의 용장(관우가 단칼에 베었다고 약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없겠죠;;)을 가진 원소는 조운을 말장으로 취급했고(그래서 조운은 원소를 버리고 나왔죠), 공손찬의 밑에 있을 때에도 원소군을 물리쳐 공손찬을 살려준 이유로 잠깐 동안 조운을 후대했을 뿐, 결국 조운은 중용되지 못했죠.
후에 유비에게 몸을 의탁했을 때에도 조운이 벤 장수들은 기껏해야 형주 주변의 현리 나부랭이들(물론 듣는 나부랭이들로써는 매우 기분 나쁘겠지만;;)입니다. 입촉 후에 서황이나 다른 장수들을 상대로 분전하기는 합니다만, 다른 오호장들처럼 무용을 뽑내며 위의 용장들을 상대로 수백합씩 싸우는 장면 따위는 보여주지 않죠.

결정적으로 비위가 관우에게 오호장이 되었음을 알리러 왔을 때, 관우의 호통 중에 "자룡은 형님께 몸을 의탁한지 오래되었으니 인정하겠지만"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조운을 인정하는 근거는 봉공연수인거지, 그의 무용이 아님이라는게 그의 심중인거죠. 뭐, 워낙에 자기 자신을 높게 치다보니 조운 정도는 눈에 안들어온 탓도 있겠습니다만;; 어쨋거나 조운의 무예는 기껏해야 평범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인거지, 다른 오호장이나 용장들처럼 위명을 떨칠 정도의 무예는 아니었다는거죠.

어쨋거나 그런 조운이 제갈량에게 중용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우선적으로는 그는 군소리 없이 말을 잘 들어먹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제갈량으로선 아주 고맙게도, 관우나 장비, 손건, 미축 등의 선주의 구신들과는 달리 등을 비빌 언덕이 없었다는게 그 이유가 되겠죠.
선주의 구신들과 달리 비교적 나중에 몸을 의탁한 조운은 여기저기 주군을 바꾸며 선주에게 (문자 그대로) "흘러" 들어왔고, 게다가 무용까지 그다지 볼 게 없던 그를 선주가 후대할 이유가 없었죠. 그러니 선주에게 후대 받는 제갈량에게 몸을 기대는 것이 조운으로써도 절박했을 것이고, 제갈량 입장에서도 구신이라고 텃세만 부리는 다른 장수들보다는 조운이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제갈량은 조운이 나이가 들어 그나마도 써먹기가 힘들어지자, 그를 대신할 젊은 장수가 하나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자신에게 찬밥 대우 받으면서도 꾸준히 전공을 세워온 위연이 부담스러운 마당에, 그를 견제할만한 조운이 늙고 병들어 쓸모가 없어지니 급박했겠죠.
물론, 조운을 대체할만한 장수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호장의 위명에 눌려지내다가, 그나마 오호장이 없어지니 이제는 위연에게 견제받는 입장이 된 마대 등이 있겠죠. 아니면 위에서 넘어온 왕평도 있겠고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삼국시대 초기부터 활동해온 장수들이라 나이도 제법 있고, 각자 나름대로의 실력과 입지를 가진 장수들이다보니, 조운만큼 자신에게 기대야 할 절박함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겠고요.

그리고, 이런 이유 이외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촉한의 만성적인 인재부족 현상입니다.
위에는 그야말로 구름같이 많은 인재가 운집해 있었고, 오에도 그 정도는 아니나 강남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많은 인재들이 몰려있었지만- 촉한에는 인재라고 부를 인물이 부족했습니다. 비록 선주의 구신들과 구 촉의 유신들이 유능하기는 하였지만 전부 나이가 들었고, 그를 대체할 젊은 인재들이 상당히 부족했습니다.
몇 되지도 않지만 그나마 젊은 준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촉한 출신이 아니라 타지 출신이었죠.
물론 촉한 출신인 관색이나 장포같은 젊은 인재들도 있기는 했으나, 이들은 무장으로써 충실했을 뿐, 지용에서는 조금 떨어졌고, 또 아버지의 후광을 많이 본 탓에 제갈량이 손쉽게 다룰 인재들도 아니었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강유였던 것입니다.

강유를 포섭함으로써, 위 내부의 강유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인재들에 대한 이간, 반간계를 써먹을 수 도 있고, 또 위의 전력을 빼앗아 촉의 전력으로 써먹을 수 도 있다는 여러가지 포석이 깔리는거죠.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아까도 언급한 "조운을 대체할 젊은 시종"이기도 하고요.

물론 강유의 능력도 비교적 써먹을만했다고 보입니다. 영 돌대가리는 아니었던 듯, 천수에서 제갈량의 계책을 막아내는 등의 활약상은 (이전에 썼던 글에서 좀 씹기는 했지만)어쨋거나 당대 최고 랭크의 책사와 동등하게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생각됩니다.(물론 운도 상당히 좋았겠지만)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갈량의 능력을 이어받기에는 자질이 영 달랐고(앞서 썼던 글에서 제갈량의 능력 부분 참고), 또 경험을 쌓기에는 워낙에 제갈량의 치마폭(...)에 감싸여 있던 탓도 있고, 무엇보다도 선주의 죽음과 함께 기울기 시작한 촉한의 국운을 제갈량의 도움 없이 혼자서 뒤집기엔 너무나 무리였습니다.
처음 의문 제기에서 강유가 "정말로 능력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면, 결국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도가 되겠군요.

엄밀히 말하자면, 촉한의 멸망은 처음부터 예견된거나 마찬가지였던겁니다. 위나 오와의 국력의 차이가 너무나 컷지만, 선주와 제갈량, 그리고 그를 뒷바침하는 몇몇 장수들의 능력만으로 그것을 간신히 극복해왔던 것인데, 그들의 사후에 그 뒤를 이어줄 뛰어난 인재의 발굴이 늦어졌던 만큼(그리고 실제로 인재가 드문 땅이기도 했고) 오히려 촉한이 삼국통일을 해냈다면 그 쪽이 더 납득하기 힘든 결말이었겠죠.

자, 오늘의 삼국지 시리즈는 이걸로 끝입니다. 다음 번에는 최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유봉에 대해서 써볼까요.

... 근데 이 시리즈에 관심 가지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건가(...)

P.S. 일부 틀린 부분이 있어 수정합니다.

by AirCon | 2005/08/18 11:55 | About Chevalier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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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피 at 2005/08/18 12:03
하하! 상산의 조자룡이라 하여 삼국지 시리즈를 즐겨하던

저에게는 약간 충격이군요!
Commented by 김현 at 2005/08/18 12:58
삼국지를 토대로 나온 2차 창작물을 보면 조운에 대한 묘사는 거의가 "욜라 짱 쎄"긴 하죠;
Commented by 크루루 at 2005/08/18 13:17
이미지 메이킹의 승리죠. 뭐 근데 사실 다른 장수들도 너무 신화적으로 강하게 묘사되는 것은 사실...
Commented by AirCon at 2005/08/18 13:20
제피,김현,크루루//엄밀히 말하자면 촉한의 장수들이 타국의 장수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강하게 그려진 구석이 많은게 사실입니다. 뭐, 작가의 의도가 처음부터 촉한을 밀어주려다보니 그런게 사실이기도 합니다만, 원래 나관중은 민간전승을 소설로 모은 것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촉한의 장수들이 왜 그렇게 강하게 전승되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하나의 재미군요.
나중에 그걸 가지고 또 글이나 하나 써볼까- 생각중입니다.
Commented by mico at 2005/08/18 15:02
재미있어요.. 계속 올려주세요.. 완료되면 문서로 만들어서 올려 놓아도 될것 같은데요 -0-/
Commented by windxellos at 2005/08/18 15:25
강유도 북벌을 자주 하기는 합니다. 사실 강유야말로 제갈량 사후 거의 유일한 주전론자(북벌론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더군요. 그러나 늘 군량 부족으로 후퇴하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제갈량과 달리 강유는 대부분 싸우다 깨져서 돌아왔기 때문에 국력에 미치는 손해가 컸고, 더해서 문관들이 제갈량 때와 달리 병력을 잘 안 내주려고 했었죠. 재능도 가용자원도 선대에 미치지 못했으니 성공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지도요...(먼산)
Commented by AirCon at 2005/08/18 15:32
windxellos//솔직히 제 생각에서는 제갈량의 북벌론 자체가 이미 글러먹은 발상이라는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위연의 주장처럼 조비 등극 직후 초장에 깨버릴게 아니라면 차라리 수성을 하자- 라는 쪽이 오히려 현실적이죠.
제갈량의 북벌은, "어차피 못먹는 감, 자꾸 찔러서 저 쪽에서 처들어올 생각이나 못하게 하자."식이었달까요. 어차피 제갈량 스스로 생각해도 촉한의 국력으로 위를 깨기엔 무리- 라기보다 불가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죠. 그러니까, 국력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면서(소모를 막는 것 자체는 불가능하니까) 자꾸 찔러놓는다는 발상이 제갈량 북벌론의 핵심인데, 그 제자인 강유는 그 핵심을 놓치고 북벌 그 자체에만 매달리죠.

이것 자체가 촉한의 멸망을 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던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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