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이야기를 접으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왠지 이공계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오공감에 추천받은 글을 보면서 딱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왜 공돌이 그러면 다들 IT만 생각하는거지?'

사실 개발자들이 힘드네 뭐네 그러지만, 그래도 같은 '공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선 IT 직군 종사자는 그래도 비교적 성골쪽에 가까운 편에 속한다. 어쨋거나 최소한 손에 기름때는 안묻히고 살잖나.
(근데 왜 나도 IT 직군 종사자인데 손에 기름때 뿐 아니라 플로어 밑을 기면서 흙먼지 묻히고 사는걸까 orz)

공돌이, 즉 이공계 전문직 종사자들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개중에는 처우가 상당히 괜찮은 직종도 있는 것 같은데, 그 '처우 좋은 직종'이 하는 일은 대체로 굉장히 험하다. No pain, No gain.
그렇지 않은 직종이 전혀 없다- 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러프한 선에서 '대체로'라는거니까.

IT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 하더라도, 굳이 같은 공돌이들 중에서 레벨을 매기자면 꽤 상위에 속해있다. 그리고 아마도 현업을 제외하면 소위 말하는 갑을병정 관계 중에서 을~병 정도에 포진해 있고.(갑은 개인적으로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굳이 있다면 아마도 지금 내가 서비스하는 고객사 정도가 될까;;) 정- 이 없냐고하면 그건 아닌데, 대체로 드물다. IT라는게 업이 실제로 그러다보니.

그래서, 이글루스 사용자 중에서도 이공계 전문직 종사자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처럼 보이는) IT 직군 종사자들의 투정은- 사실 좀 냉정하게 까자면, 배부른 투정일 수 도 있다.
그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그렇다고 페이가 더 괜찮냐 그럼 그것도 아니고, 오늘내일 언제 부도 날지 몰라 휘청이는 작은 업체에서 월급도 제대로 못받아가며 그래도 이 한 목숨 바쳐 회사 살려보겠다고 아둥바둥하는 공돌이들. 내가 아는 사람만도 몇이나 된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내 아버지도 공대를 나온 공돌이시다. 다만 나하고 전공은 좀 다른데, 그런 당신께서조차도 공돌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사실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당신께서도 평생을 공돌이로 살아 오셨으니만치 덮어놓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시진 않지만, 그렇다고해서 당신의 마음 속 사회적 지위 레벨에서 공돌이는 그렇게 높은 랭크를 차지하고 있느냐, 그럼 그건 아니라는거다.

그런 마당이니, 내게는 금전적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인간의 심리 쪽이 사실 좀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지위로 안되면 돈이라도. 정말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공돌이가 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설사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게 며태 사회생활하며 굴러먹다보면 닳고닳아 대체로 비슷해지는게 현실이고.
그렇지않은 사람에겐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아니, 비꼬자는게 아니라 한 때나마 나도 그런 것을 꿈 꿔보지 않았겠는가. 나도 공돌이인데.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존경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는거다.(그리고 이왕이면 그렇게 성공하면 나 좀 키워주기를 바란다)

위에서 언급한 이런저런 이유도 있고, 사실 공돌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사실 좀 치열한 편이다.
물론 사회생활이란게 밟거나 밟히거나. 좀 냉정한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렇다보니- 하여간에 그런건데, 그나마 '경쟁자가 적다면' 그런 부담이 다소 줄지만 공돌이의 경우는- 이게 머릿수가 장난이 아니다.
한 해 배출되는 공돌이들의 숫자가 얼마라고 생각하나? 그것도 이미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거나, 혹은 아직도 미취업 상태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제하고, 순수하게 '이제 생활전선에 뛰어들려고 준비하는' 숫자만.
굳이 통계치를 인용하진 않겠다. 당신이 졸업한 고등학교, 당신이 졸업한 대학교만 봐도 진절머리가 날테니.

경쟁자가 많으면 비율로 봤을 때 더 유리하지 않을까?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그 한 놈 한 놈 모두가 피 터지게 싸워야 할 적이다. 물론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아군도 없겠지마는, 궁극적으로 봤을 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모두 최소한 한 판은 붙어야될 상대라는거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 찍어누르고. 이게 드라마 속의 중간관리자만 느끼는 현실이라고 생각하나? 난 이 바닥에 뛰어든지 아직 5년도 안됐는데 벌써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두려울 지경이다.

물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종사자들이 한가하다고 생각해서 이런 뻘소리를 하는거겠거니- 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자면, 난 솔직히 이공계 육성하겠다고 돈지랄 쳐바를 거 있으면 그 돈 가지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쪽에 좀 투자하라고 말하는 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나라-뿐 아니라 정확히는 이 빌어먹을 극동아시아 전체-의 교육 정책은 엿 바꿔먹을래야 엿장수가 않받아줄 정도로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에 속하는 부류다.
내가 비록 그 쪽의 가방끈은 굉장히 짧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쪽의 중요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글이 중언부언, 쓸데없이 길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근데 결론을 내리자니 참 애매하다.
애초에 가방끈이 짧아 멋있게 마무리짓지도 못하겠고, 애초에 이 글을 쓴 것은 어떤 끝을 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단순히 속내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랄까. 그냥 담아두고 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냥 쏟아내는 것 뿐이다.
그러다보니 글에 일관성도 없고- 주제의식 같은 것은 더더욱 없고.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IT 직군 종사자들을 본의 아니게 까게 되었는데(나도 IT 직군 종사자다보니, 내 밥그릇에 발길질하는게 마음 편할 리 없다), 내가 무슨 IT 직군 종사자들에게 사감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냥 다들 '개발자라서 힘드러염' 이런 이야기를 보다보니 좀 더 다른 곳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힘들다'라는 것에 상대적인 가치를 두는 것은 조금 황당한 이야기겠지만, 당신이 힘든 만큼 다른 이들, 그러니까 IT 직군 종사자들보다도 (상대적으로)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공계 전문직 근로자들도 있다는거다.
왜 다들 자기 이야기만 하는건가.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까이는 것 아닌가. 조금 다른 의미이기는 하지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 라는 점에선 다른 이들이 공돌이들(구체적으로는 IT 직군 종사자) 뻘소리 한다고 흥분한 것과 의견을 같이 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게 진짜 공돌이들과 관련된 마지막 글이다.
아마- 평생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블로그에서 다시는 공돌이들 어쩌구하는 이야기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유는 여러가지. 거기에는 나 자신에 대한 환멸도 다소간 들어가 있다는 점도 전제로 하고.

하여튼간에.
배는 고프고, 할 일은 많고.
오늘까지 납기인데 이미 납기는 지나갔고, 불려가서 욕은 욕대로 먹고 지연된 문서가 몇 개 남았다.
그거나 하러 가야겠다. 무능한 공돌이는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몸으로 깨닫나보다.

덧.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요새 새치가 많이 늘었다. 새치 뽑아서 베개 만들어도 되겠다... orz

by AirCon | 2007/05/23 22:04 | 잡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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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屍君 at 2007/05/23 22:14
아무리 이과생이 줄어든다 이과생이 줄어든다 해도 실제 수능으로 뚜껑 까보면 문이과 비율이 거의 비슷합니다.
작년엔 총 54만명이 수능쳤는데 그 중 이과생이 29만명이었죠. 재수생까지 합쳐도 현 재학 이과생 수가 거의 20만명에 육박하는 걸 보면 그만큼 한 해 배출되는 공돌이 후보군이 많다는 거겠죠.. 흔히 수도 줄었겠다, 공돌계가 널럴한 줄 아는데 그건 정말 크나큰 착각입니다. 말씀대로 그 안에서도 피터지는 경쟁이 벌어지니까요.
Commented by 이주꿍 at 2007/05/23 22:26
밥벌어 먹고 사는거 어떤 일이든 만만한거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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